초혼 - 김소월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어!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어!
부르다가 죽을 이름이어1
심 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끝끝내 마자 하지 못하는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1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않은 산 우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갔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금잔디 - 김소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은 불은
가신 님 부덤 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이 왔네, 봄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오는 봄 - 김소월
봄날이 오리라고 생각하면서
쓸쓸한 긴 겨울을 지나 보내라
오늘 보니 백양의 벋은 가지에
전에 없이 흰새가 앉아 울어라
그러나 눈이 깔린 두던 밑에는
그늘이냐 안개냐 아지랑이냐
마을들은 곳곳이 움직임없이
저편 하늘 아래서 평화롭건만
새들게 지꺼리는 까치의 무리
바다를 바라보며 우는 까마귀
어디로서 오는지 종경 소래는
젊은 아기 나가는 조곡일러라
보라 때에 길손도 머뭇거리며
지향 없이 갈 밭이 곳을 몰라라
사무치는 눈물은 끝이 없어도
하늘을 쳐다보는 살음의 기쁨
저마다 외로움의 깊은 근심이
오도가도 못하는 망상거림에
오늘은 사람마다 님을 여의고
곳을 잡지 못하는 설음일러라
오기를 기다리는 봄의 소래는
때로 여윈 손끝을 울릴지라도
수풀 밑에 서리운 머리낄들은
걸음걸음 괴로히 발에 감겨라
첫치마 - 김소월
봄은 가나니 저문 날에
꽃은 지나니 저문 봄에
속없이 우나니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나니 가는 봄을
꽃지고 잎진 가지를 잡고
미친듯 우나니, 집난이는
해 다 지고 저문 봄에
허리에도 감은 첫치마를
눈물로 함빡히 쥐어짜며
속없이 우노나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노나 지는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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