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주귀성 - 김소월
물로 사흘 배 사흘
먼 삼천리
더더구나 걸어 넘는 먼 삼천리
삭주귀성은 산을 넘는 육천리요
물맞아 함빡히 젖은 제비도
게다가 비에 걸려 오노랍니다
저녁에는 높은 산
밤에 높은 산
삭주귀성은 산너머
먼 육천리
가끔가끔 꿈에는 사오천리
가다오다 돌아오는 길이겠지요
서로 떠난 몸이길래 몸이 그리워
님을 둔 곳이길래 곳이 그리워
못 보았소 새들도 집이 그리워
남북으로 오며가며 아니합니까
들 끝에 날아가는 나는 구름은
밤쯤은 어디 바로 가 있을 텐고
삭주귀성은 산너머
먼 육천리
왕십리 - 김소월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던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다고
비맞아 나른해서 밤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이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풀따기 - 김소월
우리 집 뒷산에는 풀이 푸르고
숲 사이의 시냇물, 모래 바닥은
파아란 풀 그림자, 떠서 흘러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날마다 피어나는 우리 님 생각
날마다 뒷산에 홀로 앉아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져요
흘러가는 시내의 물이 흘러서
내어던진 풀잎은 옅게 떠 갈제
물살이 해적해적 품을 헤쳐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가엾는 이내 속을 둘 곳 없어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지고
흘러가는 잎이나 맘해 보아요
봄밤 - 김소월
실버드나무의 거므스렷한 머리곁은 낡은 가지에
제비의 넓은 깃나래의 감색 치마에
술집의 창 옆에, 보아라, 봄이 앉았지 않은가
소리도 없이 바람은 불며, 울며, 한숨지워라
아무런 줄도 없이 설고 그리운 새카만 봄밤
보드라운 습기는 떠돌며 땅을 덮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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