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의 시4 - 삭주귀성, 왕십리, 풀따기, 봄밤

푸른숲과물결85 2012. 5. 5. 18:13

 

삭주귀성 - 김소월

 

 

물로 사흘 배 사흘

먼 삼천리

더더구나 걸어 넘는 먼 삼천리

삭주귀성은 산을 넘는 육천리요

 

 

물맞아 함빡히 젖은 제비도

게다가 비에 걸려 오노랍니다

저녁에는 높은 산

밤에 높은 산

 

 

삭주귀성은 산너머

먼 육천리

가끔가끔 꿈에는 사오천리

가다오다 돌아오는 길이겠지요

 

 

서로 떠난 몸이길래 몸이 그리워

님을 둔 곳이길래 곳이 그리워

못 보았소 새들도 집이 그리워

남북으로 오며가며 아니합니까

 

 

들 끝에 날아가는 나는 구름은

밤쯤은 어디 바로 가 있을 텐고

삭주귀성은 산너머

먼 육천리

 

 

 

 


  

 

 

왕십리 - 김소월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던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다고

비맞아 나른해서 밤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이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풀따기 - 김소월

 

 

우리 집 뒷산에는 풀이 푸르고

숲 사이의 시냇물, 모래 바닥은

파아란 풀 그림자, 떠서 흘러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날마다 피어나는 우리 님 생각

날마다 뒷산에 홀로 앉아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져요

 

 

 

흘러가는 시내의 물이 흘러서

내어던진 풀잎은 옅게 떠 갈제

물살이 해적해적 품을 헤쳐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가엾는 이내 속을 둘 곳 없어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지고

흘러가는 잎이나 맘해 보아요

 

 

 

 


 

 

 

봄밤 - 김소월

 

 

실버드나무의 거므스렷한 머리곁은 낡은 가지에

제비의 넓은 깃나래의 감색 치마에

술집의 창 옆에, 보아라, 봄이 앉았지 않은가

 

 

소리도 없이 바람은 불며, 울며, 한숨지워라

아무런 줄도 없이 설고 그리운 새카만 봄밤

보드라운 습기는 떠돌며 땅을 덮어라.

 

 

 

 


 



 


P 푸른소나무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