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눈물
영화에서의 눈물은 웃음 못지 않게 일상적이다. 상투적이거나 맹목적이기 쉽
다. 하지만 어떤 영화들은 바로 그 눈물 때문에 아주 강렬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화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리치 감독의 <파리
에서의 마지막 탱코>(1972년)에서의 폴(말론 브랜도)의 울음이다. 처음 만난
스무 살 프랑스 아가씨 잔느(마리아 쉬나이더)와 동물적으로 성적 탐닉에 몰
두하던 마흔 다섯 살 미국인 폴이 아내의 시체 앞에서 울먹이다 마침내 줄
곧 저주해오단 하느님까지 찾으며 통곡하던 모습은 자신의 본모습을 완전히
드러내는 발견의 순간이자 정채성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상실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 순간을 계기로 그는 전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둘만의 섹스
왕국에서 강제했던 엄격한 규율을 위반하고 그 댓가로 죽음으로 치닫는다.
폴의 울음은 단순한 정화의 게제가 아닌 변화, 즉 죽음을 예시하는 기호이
다. 송해성 감독의 <파이란>(2001년)에서 강재(최민수)가 터뜨린 눈물은 폴
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인정이라곤 전혀 없을 듯한 생 양아치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바닷가에서 터뜨린 통곡은 자신의 더러움을 정화시키는 행위를
넘어 구원에 이르는 제의이다. 육체가 아닌 영 혼의 구원. 강재가 타인의 손
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 설정은 정신적 구원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려주는
역설이다. 세상살이의 비정함을 한 눈에 보여 주는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
장치이기도 하다.
아무리 슬프다 한들 자식의 죽음을 목전에서 지켜봐야만 하는 어머니의 슬
픔만큼 슬픈 게 어디 있겠는가? 페르도 알모도바르 감독의 <내 어머니의 모
든 것>(1999년)에서 마누엘라(세실라아 로스)가 “아들아, 아들아....”라고 절
규하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마누엘라의 절규가 감동적인 이유는 아들의
죽음 직후 장기를 기증하고 아들이 그토록 그리워한 반쪽 아버지를 찾아 떠
나는 여정에 깃든 숭고함 때문이다. 그것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세상의 모든
여성들을 껴안은 오로지 어머니만이 할 수 있는 인류 구원의 이타적 구도
행위이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길>(1954년)애서 잠파노(앤서니 퀸)가
젤소미나(줄리에타 마시나)의 죽음 소식을 접한 뒤 바닷가에서 목놓아 우는
라스트 신은 지극히 평범한 희한과 거듭남의 눈물이다. 육체는 성인이지만
영혼은 아이였던 젤소미나의 순진무구하면서도 페이소스 짙은 표정은 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