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춤
디스코가 한창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영화 속의 춤 장면은 작지 않은 흥분
과 감동을 준다. 춤을 소재로 한 영화로는 존 트라볼타의 출세작인 <토요일
밤의 열기>(1977년)를 비롯해 <페임>(1980년), <플래시 댄스>(1983년),
<더티 댄싱>(1987년) 등이 있다. 춤과 관련돼 나의 뇌리 속에 남아 있는 작
품은 춤에 대한 고정 관념을 날려 버린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쉘 위 댄스>
(1996년)이다. 캐릭터가 보통 사람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데 자아 발견과
표현으로서 춤의 은밀한 매력을 설득력 있게 설파한다. 일본의 안성기라 일
컫어지는 야쿠소 고지가 열연하는 샐러리맨 수기야마의 일거수 일투족이 말
로 표현할 수 없는 큰 공감과 감흥을 준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춤 속으로
몰입해 들어가는 과정 하나하나에 삶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다. 춤은 기교
이상이라는 극중 대사의 울림은 아직도 심상에 머무른다. 재미와 감동이라면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빌리 엘리어트>(2000년)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대
처 총리 시절 영국의 쇠락해가는 노동 계급이란 주인공 배경 등에서 <풀 몬
티>(1997년)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6살 때부터 무용을 했고 2000대 일의
경쟁을 뚫고 발탁되었다는 제이미 벨의 리얼한 연기가 일품이다. 왕립 발레
학교 오디션 장에서 심사 위원들이
“왜 춤을 추느냐?”
고 묻자 빌리가 내놓은 답이 이 영화의 메시지와 분위기를,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춤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말해준다.
“....춤을 추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잊어버려요.... 내 몸 전체가 변하는 게
느껴져요. 몸에서 불꽃이 일어서 새처럼 날아갈 것 같아요.“
정말 그렇다. 춤이 아니더라도 어떤 한 분야에 푹 빠지면 시간이 지나는 것
도 모르는 것을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물랑루즈>의 바즈 루어만 감독의 데뷔작인 <댄싱 히어로>(1992년)에서 주
인공 스코트(폴 머큐리오)는 실들린 춤 솜씨를 자랑하는데 이 와중에 ‘타임
애프터 타임’, ‘러브 이즈 인 디 에어’ 등 귀에 익은 명곡과 함께 탱고
에서 왈츠, 파사 도블레, 람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춤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코카콜라 광고 전광판을 배경으로 추는 옥상 춤이 압권이다. 결과가 아닌 과
정으로 서 춤을 강변하는 주제를 고려하지 않고 스펙터클만 봐도 감동을 자아
낸다. 스펙터클한 춤이라면 <사랑은 비를 타고>(1952년)를 따라갈 작품이
없다. 진 켈리가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거리에서 주제곡인 싱잉 인 더 레인
을 부르며 댄스 신을 선보였던 작품이다. 헐리우드의 뮤지컬의 결정판답게 화려
한 춤들이 줄곧 펼쳐진다. 제라르 코르비오 감독의 <왕의 춤>(2000년)에서
는 루이 14세가 태양왕의 이미지를 선보이며 웅장하고 드라마틱하게 추는
춤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