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타 가르보
1920년대부터 30년대 초까지는 영화 예술이 대중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기
시작한 시기였다. 스크린의 주인공들은 신처럼 우상처럼 떠받들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대중에게 최초로 어필한 여배우의 상은 요부형이었
다. 아름답고 순박해 보이는 큰 눈과 반쯤 열린 듯한 입술로 남자를 유혹해
파멸시키는 역을 주로 맡았다. 메리 픽포드나 릴리언 기쉬 등이 그 원형을
선도적으로 보여준 배우들이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왕립 연극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그레타 가르보가 1920년대 중반 영화계에 데뷔했을
때만 해도 대중 선호에 밀려 별로 빛을 보지 못했다. 신비롭고 숭고한 아름
다움에 있어서는 요부형에 결코 뒤지지 않았으나 그녀가 본래 지니고 있는
순결한 영혼의 이미지는 그런 형과는 어울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갖
은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의 성격에 맞는 배역만을 고집했다. 그러나 매우 순
결하며 고통에 운명 지워진 성녀의 이미지는 1920년대 후반에 이르서는 서
서히 변화했다.
헐리우드로 무대를 옮긴 후에도 그레타 가르보는 영화에 어쩌다 한 번 출
연하는가 하면 다른 배우들과는 달리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평범한 모자를 쓰고 짙은 검은 안경으로 얼굴을 가린 그녀가 이따금 모습을
드러내면 그 자체가 신비였다. 한창 나이인 36세에 은퇴를 발표하자 팬들은
그녀가 10여년간 스크린을 통해 보여준 차가운 표정의 신비로운 모습과 그
녀 특유의 허스키한 음성을 대할 수 없게 됬다며 아쉬워했다. 루돌프 발렌티
노나 제임스 딘, 혹은 마릴린 먼로 등 인기 절정일 때 세상을 떠난 스타들을
가리켜 우리는 흔히 ‘전설적인 배우’라 지칭한다. 그레타 가르보가 그들과
다른 점은 85세까지 살았으면서도 그녀에게는 ‘전설적인 배우‘라는 표현이
줄곧 따라다녔다는 점이다. 발렌티노 등이 오랫동안 살아서 연기 생활을
계속 했었더라면 그녀의 인기가 지속됐을는지 의문인 것처럼 그레타 가르
보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도 그녀가 20대, 30대의 인기를 그대로 유지한다
는 것은 진퇴를 분명히 했다는 점과 그녀의 사생활이 그녀의 모습처럼 여전
히 베일에 싸여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전기도 몇 권 나와 있지만 정확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최근 미국 필라델피아 로젠백 박물
관에서 공개된 그레타 가르보의 편지 등의 유품은 그녀가 동성애자였다는 풍
문의 진위를 가리는 자료라 해서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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