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사랑의 새를 풀어 당신에게로

푸른숲과물결85 2012. 5. 5. 19:22

 

 

 


갇힌 사랑의 새를 풀어 당신에게로

 

 

사랑한다는 것은 - 서정윤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너의 곁에 두려 하지 않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느린 달팽이의 사랑 - 유하

 

 

 

달팽이 기어간다

지나간 새가 전해준

저 숲 너머 그리움을 향해

어디쯤 왔을까, 달팽이 기어간다

 

 

달팽이 몸 크기만한

달팽이의 집

달팽이가 자기만의 방 하나 갖고 있는 건

평생을 가도, 먼곳의 사랑에 당도하지 못하리라는 걸

그가 잘 알기 때문

 

느린 열정

느린 사랑,

달팽이가 자기 몸 크기만한

방 하나 갖고 있는 건

평생을 가도, 멀고 먼 사랑에 당도하지 못하는

달팽이의 고독을 잘 알고 있기 때문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저녁 숲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살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날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 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사랑법 -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 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P 푸른소나무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