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사랑의 새를 풀어 당신에게로
사랑한다는 것은 - 서정윤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너의 곁에 두려 하지 않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느린 달팽이의 사랑 - 유하
달팽이 기어간다
지나간 새가 전해준
저 숲 너머 그리움을 향해
어디쯤 왔을까, 달팽이 기어간다
달팽이 몸 크기만한
달팽이의 집
달팽이가 자기만의 방 하나 갖고 있는 건
평생을 가도, 먼곳의 사랑에 당도하지 못하리라는 걸
그가 잘 알기 때문
느린 열정
느린 사랑,
달팽이가 자기 몸 크기만한
방 하나 갖고 있는 건
평생을 가도, 멀고 먼 사랑에 당도하지 못하는
달팽이의 고독을 잘 알고 있기 때문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저녁 숲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살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날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 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사랑법 -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 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과 시 (0) | 2012.05.08 |
---|---|
한시의 세계1 - 두보편 (0) | 2012.05.05 |
우리 나라 동요 (0) | 2012.05.05 |
김소월의 시6 - 춘강, 밭고랑 우에서, 못 잊어, 강... (0) | 2012.05.05 |
김소월의 시5 - 님에게, 개여울의 노래, 제비, 무... (0) | 2012.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