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시 모음~~

푸른숲과물결85 2014. 7. 24. 11:01

이해인 수녀 시 모음~~

 

 

 

빨래를 하십시오 - 이해인 수녀

 

 

 

우울한 날은
빨래를 하십시오.
맑은 물이
소리내며 튕겨울리는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밝아진답니다.

 


애인이 그리운 날은
빨래를 하십시오.
물 속에 흔들리는
그의 얼굴이
자꾸만 웃을 거에요.

 


기도하기 힘든 날은
빨래를 하십시오.
몇 차례 빨래를 헹구어내는
기다림의 순간을 사랑하다 보면
저절로 기도가 된답니다.

 


누구를 용서하기 힘든 날은
빨래를 하십시오.
비누가 부서지며 풍기는
향기를 맡으며
마음은 문득 넓어지고
그래서 행복할 거에요.

 

 

 

 


 

 


비 오는 날의 일기 - 이해인 수녀

 

 

 

너무 목이 말라 죽어가던
우리의 산하
부스럼난 논바닥에
부활의 아침처럼
오늘은 하얀 비가 내리네

 


어떠한 음악보다
아름다운 소리로
산에 들에
가슴에 꽂히는 비

 


얇디얇은 옷을 입어
부끄러워하는 단비
차갑지만 사랑스런 그 뺨에
입맞추고 싶네

 


우리도 오늘은
비가 되자


 

사랑 없어 거칠고
용서 못해 갈라진
사나운 눈길 거두고
이 세상 어디든지
한 방울의 기쁨으로
한 줄기의 웃음으로
순하게 녹아내리는
하얀 비, 고운 비
맑은 비가 되자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이해인 수녀

 

 

 

하얀 눈 밑에서도 푸른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내 마음의 바위 틈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어서는 봄과 함께
내가 일어서는 봄아침

 


봄은 겨울에도 숨어서
나를 키우고 있었구나

 

 

 

 

 

 

 


민들레의 영토 - 이해인 수녀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애처로이 쳐다보는
인정의 고움도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하늘에게
피리를 불었지

 


태양에 쫓기어
활활 타다 남은 저녁 노을에
저렇게 긴 강이 흐른다

 


노오란 내 가슴이
하얗게 여위기 전
그이는 오실까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려 보낼
기쁨의 꽃씨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 싶은 얼굴이여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 이해인 수녀

 

 

 

나는 문득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누군가 이사오길 기다리며
오랫동안 향기를 묵혀둔
쓸쓸하지만 즐거운 빈집

 


깔끔하고 단정해도
까다롭지 않아 넉넉하고
하늘과 별이 잘 보이는
한 채의 빈집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올 주인이
"음, 마음에 드는데......"
하고 나직이 속삭이며 미소지어줄
깨끗하고 아름다운 빈집이 되고 싶다

 

 

 

 

 

 

 

 

이해인(李海仁)

 

출생 : 1945년 6월 7일 (강원도 양구)
소속 : 성베네딕도 수녀원 (수녀)
학력 : 서강 대학교 대학원 종교학 석사

 

 

이해인(李海仁) 수녀는 천주교 수녀이자 시인이다. 이해인 수녀는 1945년 6월 7일에 강원도 양구군에서 태어났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아버지가 납북되었고, 가족은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이 때는 부산 성남

초등학교에 다녔고, 서울이 수복된 후에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 창경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당시에 이해인의

언니가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는 수녀가 되는 데 영향을 끼쳤다.

 

1958년에는 풍문 여자 중학교에 입학했고, 이 무렵에 시 '들국화'가 쓰여졌다. 이후 1961년에는 성의 여자 고등학

교에 입학했으며, 졸업 후인 1964년에는 올리베타노의 성 베네딕토 수도회에 입회했다. 세례명은 클라우디아이다.

입회한 이후부터 '해인'이라는 필명으로 가톨릭에서 발간하는 '소년'지에 작품을 투고하기 시작했다. 1968년에

수도자로 살 것을 서원한 후, 한국 천주교 중앙 협의회에서 경리과 보조 일을 하였다.

 

이후 필리핀에 있는 성 루이스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종교학을 공부했다. 귀국한 후 1976년에 첫 시집인 '민들레의

영토'을 발간했다. 1983년 가을에는 세 번째 시집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를 발간했다. 1992년에 수녀회 총비서

직을 맡게 되었다. 비서직이 끝난 1997년에 '해인글방'을 열어두고 문서 선교를 하기 시작했다. 1998년부터 2002년

까지 부산 가톨릭 대학교의 교수로 지산 교정에서 '생활 속의 시와 영성' 강의를 했다. 2008년에 직장암 판정을 받아

항암 방사선 치료를 받고 2009년 4월부터 부산에서 장기휴양을 하고 있다.

 

 

 

이해인 수녀 시 모음
http://blog.daum.net/scs3773/9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