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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바야시 다다미치와 아오지마 전투

푸른숲과물결85 2020. 2. 21. 11:52


구리바야시 다다미치와 아오지마 전투


구리바야시 다다미치(栗林 忠道)는 일본의 육군 군인으로 최종 계급은 

육군 대장이였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이오지마 전투를 지휘했습니다.

나가노현 하니시나 군 니시조 촌(지금의 나가노 시 마쓰시로 정) 출신입니다.





이오지마(硫黃島)는 괌ㆍ사이판과 일본 도쿄를 직선으로 잇는 선의 

한 가운데에 솟은 20㎢ 면적의 작은 화산섬입니다. 1945년 2월 19일 

미 해병대가 그 섬에 상륙하면서 이오지마 전투가 시작됐습니다. 

일본 남방 전선의 중계 보급기지였던 이오지마는 그 무렵 미군 

폭격기에 대한 마지막 본토 대공 방어기지였습니다. 




구리바야시 다다미치는 이오지마 전투에서 21,000 명의 병력을 이끌고 

15만 명이 넘는 연합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전과를 올렸으나, 

결국 지연전 끝에 절망적인 상황이 되자 스스로 검을 들고 최후의 

돌격을 감행하다가 전사했습니다.


1944년 5월 이오지마에 부임한 구리바야시 다다미치는 해상 방어선을 

포기하고 섬 고지대에 터널과 참호를 뚫어 지구전 전술을 전개했습니다. 

그건 생사보다 기개를 중시하며 죽더라도 물러서지 않는다는 이른바 

사무라이의 전술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전군에 어떠한 경우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는 아오지마 전투가 자신의 마지막 

전장임을 알고 있었고, 최대한 오래 버팀으로써 도쿄의 시간을 벌어주고자 

했습니다.





아오지마 전투는 끔찍한 희생자를 만들면서 1개월 이상이나 계속된 끝에 

미군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 전투는 최초로 일본군보다 미군의 인명 피해가 

컸던 전투였습니다. 전 병력 11만 명 중 미 해군 및 해병대의 전사자는 

6,821명, 부상은 19,189명에 실종이 494명이었습니다. 일본 육해군은 

21,000명 가운데 216명만 남고 전원 전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