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후기의 보기 드문 청순한 기생 사진들~~♡♣☆
우리나라 기생의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조선해어화사』(1927)는 빼놓을 수 없는 자료다. 기생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다루면서, 삼국 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천민층으로 취급받은 기생들의 자료를 역사서와 각종 문집에서 모았다.
기생의 기원과 각 시대별 제도, 기생의 생활, 유명한 기생들, 기생의 역할과 사회적인 성격 등을 다루고 있다. 또 각종 일화
와 시조 및 시가 등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기생이 비록 천민층이었으나 매우 활동적인 여성들이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전통 문화의 계승자였고,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의기나 의료에 종사한 의녀도 있었으며, 우리 문학사에 적지 않게 공헌했
음도 재확인시켜주었다.
기생(妓生, a gisaeng girl; a singing and dancing girl)은 우리나라에서만 쓰이는 호칭이다. 지난날 잔치나 술자리에
나가 노래·춤 등으로 흥을 돕는 일을 직업으로 삼던 여자를 일컫는 말로 '예기(藝妓)'와 함께 쓰였다. 특히 '기생'의 한자어는
우리나라 문헌에서 조선시대 와서야 비로소 출전을 찾을 수 있다. '기생'의 '생'은 일부 명사 뒤에 붙어 '학생'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또한 성씨 뒤에 붙어 '젊은이' 또는 '홀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임을 나타낸다. 예컨대 교생, 서생, 선생, 학생,
이생, 허생 등과 같은 경우이다.
기생의 원류는 신라 24대 진흥왕 때에 여자 무당 직능의 유녀화에 따른 화랑의 '원화(源花)'에서 찾는다. 무당의 유녀화는
인류의 매춘 역사를 논의하는 일반론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정약용과 이익은 기녀의 문헌 기록을 들어 고려 때에 그 기원을
찾았다. 백제 유기장의 후예인 양수척이 수초를 따라 유랑하매, 고려의 이의민이 남자는 노예로 삼고, 여자는 기적(妓籍)을
만들어 기(妓)를 만드니, 이것이 기생의 시초다.
조선 시대 기생의 배출지로 이름났던 곳은 서울, 평양, 성천, 해주, 강계, 함흥, 진주, 전주, 경주 등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권번(券番)이 이 지역에서 이러한 역할을 이어갔다. 권번은 동기(童妓)에게 노래와 춤을 가르쳐 기생을 양성하는 한편, 기생
들의 요릿집을 지휘하고 그들의 화대(花代)를 받아주었다. 비로소 일반인도 요릿집에서 만날 수 있는 존재가 된 기생은 권번
에 적을 두고 세금을 바쳤으며, 이들 권번 기생은 다른 기녀들과는 엄격히 구분되었다. 그 당시 기생에 대해서는 호감과 배척
이라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함께 있었다. 한쪽에서 보면 기생들은 봉건적인 유물로서 배척해야 할 대상이었으나, 실상은
현대적인 대중문화의 스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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